1. 서 론
경주는 지리적으로 동서남에 산이 있는 분지지역에 위치해 있어 외세의 공격에 대해 방어하기가 좋을 뿐 아니라 수량이 풍부하여 신석기시대부터 사람들이 거주하여 왔다. 이곳에 도읍을 정한 신라는 월성을 왕성의 중심으로 삼고 월성을 바로 끼고 도는 남천의 서남단에 월정교를 건설했다. 월정교가 세워진 시기는 신라의 전제왕권이 정점에 이르렀던 경덕왕 19년(서기 760년) 이다. 따라서 월정교는 월성과 함께 신라 전제왕권의 권위를 과시하고 중앙의 통치라는 명제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려는 의도하에 당시로는 크고 웅장하게 건설된 것으로 보인다.
2000년 11월 신라 천년의 고도인 경주의 역사와 문화를 담고 있는 ‘경주역사유적지구’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경주역사유적지구’는 유적의 성격에 따라 경주 남산지구, 월성지구, 대릉원지구, 황룡사지구, 산성지구 등 5개의 역사 유적지구로 구분된다. 월정교는 월성지구에 접해 있고, 대릉원지구와 황룡사지구가 인접해 있다.
세계문화유산 등재 이후 경주시는 역사유적지구에 대한 대대적인 정비사업을 지속해 오고 있다. 특히 정부는 경주 고도의 정체성 확보와 문화재의 보존․정비사업을 통한 경주의 역사문화환경 조성을 위해 2005년 7월 경주역사문화도시 조성사업 계획을 확정․발표하였다. 문화재청과 경주시는 이러한 경주역사문화도시 조성사업의 일환으로 신라 천년 궁성인 월성과 왕경을 연결하는 신라 옛길인 월정교의 복원을 진행하고 있다. ‘월정교 복원의 기본계획 및 타당성조사(NUCH, 2006)’를 시작으로, ‘월정교 복원 세부계획 및 기본설계(NUCH, 2007)’, ‘월정교 복원 실행계획 및 실시설계(NUCH, 2010)’를 거쳐 2008년 4월에 월정교 교량부에 대한 복원사업을 착공하였다. 또한 2016년 1월에는 월정교 남측 및 북측 입구인 문루에 대한 복원공사가 착공되어 현재 공사가 진행 중에 있다.
복원공사 착수 전 월정교 교량지는 판석과 장대석으로 축조된 4개의 교각부가 남북방향으로 남아 있었고, 남측 및 북측 교대는 석축이 일부 남아 있었다. 1980년대 중반까지 실시된 발굴조사 이후 남측 및 북측 교대의 일부를 복원하였고, 발굴된 석재유구 중 교각부 기초석 및 교각석을 제외한 나머지 석재를 교대부 주변에 정리하여 놓아두었다(Fig. 1 참조). Fig. 1은 2005년 10월 시작된 ‘월정교 복원 기본계획 수립 및 타당성조사’ 용역이 착수된 직후의 월정교지 현황을 보여 준다. 발굴조사 실시 후 대략 20년이 경과한 시점에서 월정교지는 북측교대에 인접한 1호교각을 제외한 3개의 교각기초 유구가 퇴적토에 의해 덮여 있다.
월정교와 같은 문화재의 복원은 잔존 유구 및 유물을 정비하고 학술적 고증을 거쳐 원래 모습에 가깝게 복원(또는 중건)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현존 유구 및 유물의 훼손을 최대한 억제한 상태에서, 즉 원형을 가급적 유지한 상태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가급적 잔존하는 유구와 동일한 재료를 이용하여 복원공사를 실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월정교의 복원공사에는 대략 3,100m3의 석재가 필요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복원공사 시 가급적이면 현재 남아있는 석재를 활용할 예정이며, 조사 결과 남아 있는 석재 중 재사용 될 수 있는 석재는 500m3정도이다. 따라서 월정교 복원에는 약 2,600m3의 석재가 추가적으로 필요하며, 석재를 가공하여 사용해야 함을 고려하면, 적어도 4,000m3정도의 석재가 필요할 것으로 판단된다.
본 연구는 월정교 복원에 필요한 석재의 수급 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방편의 일환으로 수행되었다. 즉, 월정교 복원에 필요한 석재는 가급적 기존 석재와 동일한 암석학적 특성을 가지는 재료가 사용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현재 남아있는 석재 유구에 대한 암석학적 특성을 조사 및 분석하였다. 또한 경주 일원 화강암류의 암석학적 특성에 대한 조사 및 분석을 통해 통일신라시대 월정교 축조시 사용된 석재의 산지를 추정하였다.
2. 발굴조사 시 확인된 월정교지 석재 유구
월정교는 기록에 나타나는 경주 남천의 여러 교량 가운데 유지가 가장 잘 남아 있으며, 교량지는 월성 서남편 남천 하상에 위치한다. 월정교지는 일정교지와 함께 2004년 11월 27일 사적 제 457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행정구역상으로는 경주시 인왕동 245번지와 교동 48번지이고, 지도상으로는 동경 129°12‘16“, 북위 35°40’00”에 교량 중심을 두고 있다.
월정교지는 1975년 처음으로 문화재관리국 경주사적관리사무소에서 교대 및 교각을 실측조사한 이래로, 1980년대 중반까지 수차례에 걸친 석재조사 및 발굴조사가 실시되었다. 1970년대 및 80년대에 걸쳐 수행된 월정교지 조사결과(Gyeongju-si, 1986; NRICH, 1988)에 따르면, 월정교지는 판석과 장대석으로 축조된 4개의 교각기초 유구가 등간격으로 남아 있고, 남측 및 북측 교대는 석축이 일부 남아 있었다. 또한 교각기초 중 남측과 북측에 위치한 교각은 기초석 위에 한 단의 교각석이 남아있고, 하상 중앙부에 위치한 두 개는 기초석만 남아있었다. 교각 주위에는 교량에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이는 여러 가지 석재가 하상에 넓은 범위로 흩어져 있었다(Fig.2 참조).
각 교각의 중심간 거리는 12.55m로 세 경간이 모두 동일하였고, 교대와 교각사이는 11.46m로 남쪽과 북쪽의 두 경간이 같다. 따라서 남측교대와 북측교대간 거리는 총 60.75m 이다.
본 논문에서는 월정교지에서 발견된 4개의 교각 유구에 대해 편의상 가장 북쪽에 위치한 교각을 1호교각으로 명명하고, 다음 교각에 대해서는 2호교각, 3호교각, 그리고 가장 남쪽에 위치한 교각을 4호교각으로 명명하기로 한다.
교각기초는 하천의 상류측 및 하류측에 각각 가로×세로×높이가 1.8~2m×1.8m~2m×0.6~0.7m인 방형 석재 4매를 田자 모양으로 맞대어 놓고, 그 사이 5.5m 정도의 구간에는 0.6m×2m× 0.6m 크기의 장대석을 남북 방향으로 놓아 확대기초 형식으로 조성되어 있다. 여러개의 화강석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교각기초부의 크기는 길이 12.9m, 너비 약 3.9m로, 동서방향으로 놓인 장방형이다. 교각기초의 상․하류측 방형대석 앞에는 큼직한 자연석이 3~4개 가량 묻혀 있었는데, 이 자연석은 하상바닥의 세굴(洗掘)을 방지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1호교각과 4호교각의 경우에는 교각기초석 상부에 1단 교각석이 일부 남아있었다. 교각의 첫 단은 장대석 등으로 길이 약 13.5m, 너비 약 2.8m 크기로 축조하였다. 축조상태를 자세히 살펴보면, 상류와 하류 끝에 1.2m×1.2m×0.6m 크기의 방형 석재를 물이 흐르는 방향에 마름모 형태로 놓아 교각에 작용하는 수압을 분산시킬 수 있도록 하였고, 그 사이에는 0.6m×0.65m×1.5~3m 크기의 장대석을 교각기초의 가장자리를 따라 잇대어 놓았다. 양변 가장자리를 따라 놓은 장대석 사이의 빈 공간에는 두 곳에 工자 모양으로 버팀석을 놓아 장대석이 안으로 쏠리지 않도록 하였고, 그 외 공간에는 크기가 일정치 않은 석재로 채워 넣었다.
교각에 사용된 석재를 살펴보면, 마름모형의 석재와 장대석에는 원두은장으로 연결시켰던 은장 홈이 남아있다. 그러나 양변 가장자리에 놓인 장대석 사이에 모두 은장을 사용하지는 않았다. 다시 말해서 수압을 많이 받는 교각의 양쪽 단부에만 은장으로 이음하여 보강하였다. 또한 장대석의 상면에도 직경과 깊이가 각각 100mm 크기인 원형 구멍이 일정한 간격 없이 5개소에 뚫려 있어서, 교각을 쌓아 올릴 때 상․하 석재 사이에는 철제 촉을 사용하여 보강하였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일부 마름모형 석재의 상면 중앙에는 직경 약 400mm크기의 원형 홈이 약 60mm 깊이로 파여져 있는데, 이 원형 홈은 현재 남아있는 교각구조에서는 전혀 필요하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이 홈은 현 선형교각으로 개축하기 이전 교각에 필요하여 판 것으로 이 구멍에 촉이 있는 석주를 세웠을 것으로 추측된다.
한편, 4호교각과 남측교대 사이에는 하상세굴을 방지하기 위한 보호공이 Fig. 2(b)에 보인 바와 같이 남아 있다. 이 세굴방지공을 살펴보면, 목재를 이용하여 엎을장과 받을장으로 격자 틀을 만들고, 그 사이에 크고 작은 자연석을 채워서 상면을 대체로 바르게 맞추었다. 단면이 250~350mm 정도 되는 각재를 사용하여 짠 격자틀 주간은 24구간으로 구획하였고, 한 구간의 크기는 2.6m×2.7m 정도로 동서방향보다 남북방향이 조금 길다.
부식이 심하여 부재를 모두 확인하진 못하였으나, 동서로 놓인 부재를 정밀하게 조사한 결과 나무결이 일부 남아있어서 한 부재임을 확인하였고, 남북으로 놓은 목재는 물론, 동서로 놓은 목재도 같은 부재임을 확인하였다. 다시 말하면 남북방향의 부재를 받을장으로 놓고 동서 방향의 부재를 엎을장으로 짜 맞추었음을 확인하였다. 격자유구의 목재상면과 4호교각 기초대석 상면의 높이가 비슷하고, 격자 유구 북쪽면이 4호교각 기초대석에 맞닿아 있어서 교각이 주형으로 중수된 후에 이 하상 세굴 방지를 위한 보호시설인 격자 유구가 설치된 것으로 판단된다.
3. 월정교지 일원의 지질학적 특성
3.1 경주지역의 지질
월정교가 위치하는 경주지역은 백악기 경상분지의 대구층과 백악기~제3기 초의 화강암류가 분포하는 밀양소분지의 동부에 위치한다. 경주지역의 지질은 하위로부터 백악기의 퇴적암류(하양층군)와 화산암류(유천층군), 백악기말~제3기 초의 심성암류, 제3기 화산암과 퇴적암류가 분포한다(Kim and Kim, 1997; Koh, 2001) (Fig. 3 참조).
백악기 퇴적암은 하양층군의 대구층(Tateiwa, 1929), 진동층(Chang, 1975), 또는 울산층에 대비되며, 주로 사암과 셰일로 구성되어 있다. 유천층군의 화산암류는 주로 안산암질~데사이트질 암석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심성암류는 각섬석섬록암, 울산 석영몬조니암과 화강암류로 구성된다(Koh, 2001).
화강암류는 암석학적인 특징과 관입관계에 근거하여 토함산화강섬록암, 경주흑운모화강암(흑운모화강암), 남산 A-형 알칼리장석화강암(남산화강암)으로 구분되며(Lee et al., 1997; Koh, 2001; Hwang, 2004), 경주반상흑운모화강암은 토함산화강섬록암의 북부에 작은 규모로 분포한다. 특징적으로 토함산화강섬록암에는 염기성 미립 포유암(MME-mafic microgranular enclave: Kim et al., 2004)이 흔하게 관찰되는데, 이는 마그마 혼합의 증거로 알려져 있다. 야외산상에 따르면 흑운모화강암이 토함산화강섬록암을 관입(Hwang, 2004)한 것이 확인되며, 흑운모화강암과 토함산화강섬록암은 점이적인 관계를 가진다. 그리고 토함산화강섬록암과 흑운모화강암을 관입한 남북에 가까운 주향을 가지는 염기성 암맥군의 Ar-Ar 연령은 48 Ma로 알려져 있다(Kim et al., 2005). 제3기 화산암과 퇴적암류는 주로 염기성과 산성의 이원성 화산물질과 역암 및 이암으로 구성되어 있다(Son, 1998).
한편, 경주일원에 분포하는 화강암류는 간략하게, 남산화강암, 흑운모화강암, 토함산 화강섬록암, 미문상화강암으로 4대분할 수 있다.
3.2 경주일원 화강암류의 암석학적 특성
3.2.1 남산(알칼리장석)화강암
육안으로 회백색 내지 유백색을 띄며, 중립 내지 세립의 등립상 조직을 보이는 암체이다. 간혹 미아롤리틱 정동 내에 석영과 장석 등이 산출되며, 각섬석이 풍부한 페그마타이트가 발견되기도 한다. 현미경하에서 주로 석영과 퍼싸이트가 발달하는 알칼리장석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간혹 이들의 간극을 충전하는 알칼리각섬석과 철질 흑운모가 관찰된다. 특히 단결정의 사장석이 나타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Fig. 4 참조). 경주 남산 일원을 중심으로 암주상의 형태로 나타나며, 회백색 내지 유백색을 띠는 전형적인 알칼리장석화강암이다.
3.2.1 흑운모화강암
경주 지역에서 가장 넓은 분포면적을 차지하며, 울산단층 주위로 널리 분포하는 암체로서, 중립 등립상 암체로 담홍색을 띠며, 유색 광물의 함량은 매우 적은 흑운모화강암이다. 현미경하에서는 석영, 알칼리장석, 사장석, 흑운모, 녹니석, 녹렴석, 그리고 불투명광물이 관찰되며, 간혹 흑운모와 녹니석 등이 자철석과 혼재되어 석영과 퍼다이트조직 정장석의 입간 충전물로 산출되기도 한다.
토함산 동남부 감산사 근처에서 화강섬록암을 관입한 흔적이 뚜렷이 나타난다. 월정교지의 서북부 남산지역에서는 알칼리장석화강암과 관입접촉부를 나타내고 있으나, 선후관계는 불명확하며, 알칼리장석화강암과의 경계부에 부분적으로 미문상화강암이 협제되어 있다. 대체적으로 풍화작용을 많이 받아 신선한 노두를 관찰하기는 어렵다. 울산단층을 중심으로 마석산, 외동읍, 삼태봉 일대로, 담홍색을 띠는 화강암류로 구성되어 있다(Fig. 5 참조).
3.2.3 토함산 화강섬록암
화강섬록암은 각섬석흑운모화강섬록암으로 기재되었으며, 경주지역의 토함산암체의 동측부와 울산지역의 서측부 니전리와 욱곡리에서 소규모의 암주상으로 나타난다. 대개 암회색 내지 암녹색을 띠며, 세립 내지 중립의 등립상을 나타낸다. 현미경하에서 석영, 정장석, 사장석, 흑운모, 각섬석 등이 주성분광물로 나타나며, 녹렴석, 인회석, 갈렴석, 녹니석, 불투명광물 등이 관찰된다(Fig. 6 참조). 유색광물의 함량이 비교적 많으며, 흑운모와 각섬석의 반정으로 이루어진 염기성광물 집합체가 토함산 정상부 주변 암체에 주로 나타난다. 불국사 부근의 노두에서는 포유암이 잘 나타난다.
3.2.4 미문상화강암
미문상화강암은 등립질화강암의 연변부에 국한되어 경주지역의 서북부, 동북부~동남부의 일부지역에 암상간 경계부에 주로 소규모로 분포하며, 등립질화강암과는 점이 적으로 변하는 양상을 보인다. 육안상으로 담홍색, 세립질이며 장경 5~10mm의 미아롤리틱 정동이 잘 발달되어 있다. 현미경하에서는 석영, 알칼리장석, 퍼싸이트, 사장석, 녹니석, 녹렴석, 그리고 불투명광물이 관찰된다(Fig. 7 참조).
4. 월정교 석재 유구의 암석학적 분류
월정교 구성부재의 암석학적 분류를 위해 먼저, 현장에서 면밀한 육안 관찰을 통하여, 이를 분류하고자 하였다. 이 조사의 어려움은 구성부재가 모두 문화재에 준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어, 해머로 타격하여 신선한 노출면을 관찰한다던지, 박편제작 또는 화학분석을 통하여 정확한 분류를 할 수 없었다는 점을 먼저 밝힌다. 따라서 본 현장조사에 참여한 조사자들의 경주일원 화강암류에 대한 다년간(최대 20년)의 야외조사 경험이 중요한 분류 기준이었음을 먼저 밝힌다. 또한 보다 객관적인 분석을 위해, 휴대용 대자율 측정기(SM-20 Susceptibility Meter)를 이용하여 구성부재의 전암대자율을 측정하여 자료로 활용하였다.
월정교 구성부재중 월정교 복원에 재사용될 것으로 판단되는 암석(총 1181개)에 대해 조사를 실시하였다. 그 중 484개의 부재에 대해서는 전암대자율을 2회 이상 측정하여 평균을 구하였다. 조사결과는 Tabe 1과 같다.
Table 1에 나타낸 바와 같이 월정교 구성부재는 대략 남산화강암을 86% 정도 사용하였으며, 흑운모 화강암을 8.5%, 토함산 화강섬록암을 1.7%, 미문상화강암을 1.6%, 기타 암석을 2.1%정도 사용하였다.
현재 형태가 남아 있는 교각기초부에서는 남산화강암의 빈도가 가장 높기는 하나 주변에 있는 미문상화강암, 토함산 화강섬록암, 흑운모 화강암 등을 다양하게 사용하였다. 한편, 교대부는 문경석과 남산화강암을 50:50정도 사용한 것으로 파악되었다. 교대부에 사용한 문경석은 1984년에 북측교대지에 위치한 사마소를 이전하고 1989년에 붕괴된 교대부 석축을 일부 복원하는 과정에서 신재로 사용한 것이다.
한편, 월정교의 초기 축조에 남산화강암을 가장 빈번하게 사용하기는 하였으나, 남산화강암만을 사용한 것은 아닌 것으로 조사되었고, 이 남산화강암도 광물의 입자크기가 다양하고, 변질정도가 다양할 뿐만 아니라 전암대자율 값에서도 넓은 범위를 보인다. 따라서 과거 남산의 채석장과 같은 큰 하나의 노두에서 채석된 것으로 보기는 어려우며, 남산의 다양한 지점에서 운반된 것으로 판단된다. 이는 월정교와 남산이 지리적으로 인접할 뿐만 아니라, 남산화강암 절리의 간격과 같은 지질학적 특성으로 인해 큰 암괴형태의 암석을 용이하게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으로 판단된다.
5. 월정교 석재유구의 산지 추정
월정교 구성부재는 대략 남산화강암을 86% 정도 사용하였기 때문에, 남산화강암에 대한 야외조사를 통해 석재의 산지를 추정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남산화강암의 전암대자율 분포와 암석기재적 관찰, 그리고 절리패턴 조사를 실시하였다.
5.1 남산(알칼리장석)화강암의 대자율 분포
야외 조사시 휴대용 대자율 측정기(SM-20 Susceptibility Meter)를 이용하여 월정교 부재에서 측정한 전암대자율값과 비교해 보고자 하였다. 대자율은 암석별로 적어도 5회 이상을 측정하여 그 평균값을 취하였으며, 한 노두에서도 아주 낮은 값을 보이는 것들은 암석의 풍화에 따라 대자율 값이 낮아질 수 있기 때문에 재측정 또는 함께 측정한 자료들과 비교하여 선별하였음을 밝힌다. 남산 화강암의 대자율은 Fig. 8과 같은 분포를 보인다. 남산화강암의 대자율값은 남산화강암 전체에서는 변화를 보이지만, 하나의 노두에서는 대체로 유사한 값들을 가진다. 전체 범위는 0.04에서 4.37의 변화를 보이며, 평균값은 1.52의 값을 보인다. 월정교 구성부재에서는 0.04에서 7.05의 범위를 가지는데, 남산화강암은 이 범위 안에 해당한다. 이는 월정교 구성부재에서 측정한 시료수가 1,017개로 야외조사시 보다 훨씬 많은 시료에 대해 대자율을 측정하였기 때문인 것으로 판단된다. 그리고 평균값을 비교하면, 월정교 구성부재는 0.93으로, 야외에서 측정한 남산화강암의 값(1.52)이 약간 더 높은 값을 가지는 것을 알 수 있다. Fig. 8에 나타난 결과를 가지고 판단할 때 남산화강암은 남산의 중심부에서 가장 자리로 가면서 대자율 값이 높아지는 경향이 있으며, 화강암 구성입자의 크기도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 이를 남산의 중심부로 가면서 고도가 증가하는 것과 연관 지어 생각하면, 남산의 중심부로 가면서 남산화강암을 형성한 마그마 방의 상부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 한편 남산의 동측에 해당하는 노두에서 상대적으로 낮은 대자율값들을 보인다. 염불사지 삼층석탑 남쪽 계곡에서 측정한 남산화강암과 다른 암상을 가지는 노두를 제외하면 이러한 양상은 두드러진다. 따라서 남산화강암의 전암대자율 분포의 평균값으로 판단하면, 월정교 구성 부재는 상대적으로 낮은 대자율 분포를 보이는 남산의 동측에 분포하는 암석들에서 기원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된다.
5.2 남산(알칼리장석)화강암의 절리 패턴
야외 조사시 클리노 컴퍼스를 이용하여 남산화강암의 절리 분포를 측정하였다. 한편 이 결과의 해석에는 Cho(2004)의 연구 결과도 참고 하였다. 남산화강암의 J1절리의 방향은 (N10°E - N20°W)에 해당하며 대체로 남북방향에 해당한다. J2절리의 방향은 (N80°E - N100°E)에 해당하며 대체로 동서방향에 해당한다. 한편 노두에 따라서는 북동(N30°E - N50°E)방향에 해당하는 것들이 주절리로 분포하는 곳도 있다. 그리고 거의 모든 노두에서 사면의 경사 방향과 평행한 판상절리가 분포한다. 따라서 남산화강암은 지표면에 가까운 부분에서 남북과 동서 방향에 해당하는 절리와 판상절리가 잘 발달되어 있어, 자연적으로 직육면체의 블록(block)형태를 이루고 있다. 따라서 석조구조물을 제작하는데 있어 훌륭한 재료로 사용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된다. 한편, 월정교가 현재 위치한 지리적인 위치가 주변의 여러 산들 중에서 남산과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기 때문에 남산화강암이 월정교에 사용된 주재료가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된다.
5.3 남산의 지형
남산의 지형과 관련된 Cho(2004)의 자료를 살펴보면, 경주 지역의 대표적인 산으로 남산과 토함산이 있다. 경주평야의 주위에는 서쪽에 선도산(仙桃山), 동쪽에 낭산(狼山)과 명활산(明活山), 북쪽에 금강산(金剛山) 등 많은 산들이 성벽처럼 둘러서 있는데 그중에 크고 높은 산이 남산이다. 남산에는 높이 494m의 고위봉(高位峰)과 468m의 금오봉(金鰲峰) 두 봉우리가 솟아 있는데 이 두 봉우리에서 흘러내리는 40여 계곡과 산발들을 합쳐서 경주 남산이라 부른다. 경주시 탑동, 인왕동, 배반동, 남산동, 평동, 시동과 내남면 배리, 용장리, 이조리, 노곡리에 걸쳐있다. 남산의 길이는 남북이 약 12km, 동서가 약 8km이고 골짜기는 약 30개에 이른다. 남산은 주봉인 금오산(494m), 도당산, 양산을 비롯하여 남쪽으로 이어지는 외산의 주봉인 고위산(494m)으로 이루어져 있다. 토함산(734m)은 경주시 진현동, 황룡동 일대에 위치한다. 경주의 동쪽 끝을 둘러싸고 있는 산으로 신라인의 얼이 깃든 영산으로 일명 동악이라고도 불린다. 신라 다섯 명산 중의 하나인 토함산은 예로부터 불교의 성지로 자리 잡아 산 전체가 하나의 유적지로 보일 만큼 유물과 유적이 많다.
남산의 지형과 월정교 부재의 산지와 관련하여 살펴보면 남산의 서측사면은 완만하며, 산 정상에서 기원된 핵석(corestone)등의 분포가 상대적으로 적고 크기가 작은 반면, 동측사면은 급하고 토르(tor)가 잘 발달하고 이동된 핵석의 양과 규모가 많고 크다. 따라서 월정교 부재로 사용된 남산화강암은 남산의 동측 사면에서 기원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된다.
이상의 결과들로부터 월정교 구성 부재로 사용된 남산화강암은 남산의 동측사면 아래의 통일전과 탑곡일원에 넓게 분포하는 토르 또는 이동된 핵석이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된다(Fig. 9 참조).
6. 결 론
경주시에 위치한 월정교의 복원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월정교의 복원공사를 위해서는 사용가능한 잔존 석재 이외에도 4,000m3정도의 석재가 필요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문화재의 복원은 잔존하는 유구와 동일한 재료를 사용하여 실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따라서 월정교의 복원에 필요한 석재의 수급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월정교에 축조에 사용된 석재의 원산지를 파악하기 위한 연구를 수행하였다. 연구결과 얻은 결론은 다음과 같다.
(1)월정교 축조에 사용된 1,181개의 석재 유구에 대한 대자율 측정과 육안판별을 통해 암석학적 특성을 평가하였으며, 이를 통해 월정교 축조에 사용된 석재는 대부분 남산화강암임을 확인하였다.
(2)월정교 석재 유구에 대한 대자율 측정 결과와 남산에서 측정한 결과를 비교하면, 월정교 구성부재는 평균 0.93으로, 야외에서 측정한 대자율 값(평균 1.52)이 약간 더 높게 나타났다. 따라서 대자율 분포의 평균값으로 판단하면, 월정교 구성 부재는 상대적으로 낮은 대자율 분포를 보이는 남산의 동측에 분포하는 암석들에서 기원되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3)남산화강암의 절리패턴을 조사한 결과, 절리발달 형태가 석재를 수급하기에 용이하고 지리적으로도 월정교에서 가장 가까운 남산에서 월정교 축조를 위한 석재를 수급했을 가능성이 높다.
(4)남산의 지형은 서측사면은 완만한 반면에, 동측사면은 경사가 급하고 토르(tor)가 잘 발달되어 있으며 이동된 핵석의 양과 규모가 많고 크다. 따라서 월정교 부재로 사용된 남산화강암은 남산의 동측 사면에서 기원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남산의 동측사면 아래의 통일전과 탑곡일원에 넓게 분포하는 토르 또는 이동된 핵석이 주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문화재의 축조에 사용된 석재 등의 유구는 직접적인 타격이나 시편채취를 통한 실험적 분석에 어려움이 있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석재 유구에 손상을 주지 않으면서 석재의 산지를 추정하는 과정과 방법을 월정교 복원 사례를 통해 살펴보았다. 향후 본 연구의 내용 및 결과는 다른 문화재의 복원사업에도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